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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작성일 2012-07-17 (화)
ㆍ추천: 0  ㆍ조회: 2041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엄정옥씨의 삶-②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지체장애 2급 엄정옥씨의 삶-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2-07-17 17:12:24
적령기가 되자 부모님은 그를 학교에 입학시킨다고 부산으로 데려갔다. 아래로 있는 두 동생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동생을 처음 보는 상태라 서먹하고 남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피는 물 보다 진한 모양이었다. 그냥 형제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흡수가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의 엄정옥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어느 날의 엄정옥씨. ⓒ이복남
 
하루는 남동생이 어떤 여자애한테 맞아서 울고 있었다. ‘누구냐 내가 가만 안 둔다’하고 그가 가서 한 대 때렸는데 목발을 짚던 팔 힘이 얼마나 세든지 여자애가 밀려서 나둥그러지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손녀의 울음소리에 놀란 할머니가 반찬 하던 식칼을 들고 나왔는데, 그 칼을 보고 내 죽이러 온 줄 알고 내가 울고, 우리 어머니가 뛰어 나오고 애들 싸움이 가족싸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싸운 여자 애가 영심이였다. 그 때부터 영심이는 친구가 되어 초등학교 다닐 때는 언제나 그의 책가방을 들어 주곤 했다. 아버지가 전기 기술자였으므로 엄마가 그의 치료비로 재산을 탕진했다 해도 그의 집에는 전자제품 같은 것은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무렵 ‘여로’를 했는데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어요.”
그의 집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기에 ‘여로’ 할 시간이면 동네 사람들이 전부 그의 집으로 TV를 보러 왔다. 그 중의 어떤 남자가 ‘여로’를 보러 왔다가 소니 라디오를 훔쳐 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도둑인 줄 몰랐다가 나중에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의 낯선 아이들은 시골의 친구들 하고는 달랐다. 부산에서의 유년시절은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학교 친구들은 절뚝발이에서부터 별의별 수식어로 그를 놀렸다. 어떤 애들은 그가 지나가면 뒤에서 밀어서 무릎은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는 학교에 가기 싫어 며칠씩 결석을 하기도 했다.

“3학년 때 시험을 치는데 필통이 없어졌어요. 아무도 연필도 안 빌려 주대요.”
할 수 없이 백지 시험지를 내고 나니까 뒷자리 아이가 엉덩이 밑에서 필통을 꺼내 주었다. 시험지에 이름도 안 썼다고 선생에게 불려갔다. 그 때만 해도 어린 마음에 선생에게 다 일러 바쳤는데 선생은 뒷자리 아이를 불러서 어찌나 뺨을 세게 때리든지 아이의 양 뺨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 때부터 그의 인생은 더 고달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달인가 학교를 안 갔는데 나중에는 선생이 데리러 왔다.

따뜻한부뚜막의 벽면을 장식한 LP판.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따뜻한부뚜막의 벽면을 장식한 LP판. ⓒ이복남
 
그는 부산이 싫었고 학교 친구들에게 넌더리가 나서 4학년부터 다시 거제로 내려갔다.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국어와 사회 그리고 음악이나 미술 등은 제법 잘 했다.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했고 전국작곡대회에서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집에 피아노가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집 피아노를 쳤으나 전국대회에 입상을 하자 근처 예식장 아저씨가 무료로 피아노를 가르쳐 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체육시간은 교실 지킴이였다. 체육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기본 점수를 받았기에 그는 교실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하루는 체육 선생이 그를 부르더니 체육에 관해서 이것저것 물었는데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는 숨쉬기 운동만 열심히 한 것 같았다며 웃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시와 음악에 탐닉했다.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등을 즐겨 암송했다. 부룩실즈와 징기스칸을 좋아했다. 그는 선구자를 좋아했지만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로 시작하는 백마강 노래를 아버지가 입에 달고 살았으므로 백마강 노래는 절로 나왔다. 그런데 백마강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셨는지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글을 쓰고 싶었다. 단편소설 등에 응모도 해 봤지만 떨어졌다. 고3이 되었지만 대학 갈 형편은 안 되고 글 쓰는 재능은 부족한 것 같았다. 다시금 절망이 밀려 왔다. 그러나 누구에게 털어 놓고 의논할 사람 하나 없었다. 주위에 사람도 없었지만 자신의 신세를 털어 놓을 만한 배짱도 없었다. 곧 죽어도 자존심만 강했던 것이다.

엄정옥씨가 만든 도자기페인팅 접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엄정옥씨가 만든 도자기페인팅 접시. ⓒ이복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올라와서 취직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서면에 있는 용달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전화가 오면 용달차를 배차해서 보내주는 일이었는데 사무실에는 항상 용달차 기사들이 들락거렸다. 용달차가 들어오면 기사들에게 커피를 타 주었는데 사장은 기사들에게 타 주는 커피를 한잔에 얼마씩 받으라고 했다. 그렇게 생긴 커피 값은 월급 외에 그의 부수입이 되어 그는 제법 돈을 벌었다.

언니 둘은 일찍 결혼해서 집을 떠났다. 아버지는 백수이고, 어머니가 노가다 일을 하러 다녔지만 그의 수입이 생활비이자 두 동생의 학비였다. 월급을 받아도 그의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그의 월급에서 절반은 큰 이모가 다니는 보험회사에 적금을 들었다. 돈이 모이면 대학을 가고 싶었고 정 안되면 문방구라도 하나 차릴 생각이었다.

“그 때는 목발을 짚고 어떻게 버스를 타고 다녔는지…….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큰 이모가 왜 보험을 해약 했느냐고 물었다. 해약이라니 왜? 아버지가 몰래 보험을 해약해서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아버지하고 대판 싸우고 집을 나왔다. 갈 데가 없었다. 친구 집에 며칠 얹혀살기는 했지만 어느 날 친구 엄마가 ‘정옥이는 언제 집에 가노?’ 물었을 때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든지 당장 친구 집을 나와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백마강 노래를 좋아 하시던 아버지, 딸의 장애 치료를 위해 헌신 하셨던 아버지, 왕년에는 돈 잘 버시던 아버지가 오죽하면 장애인 딸의 돈에 손을 댔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 때문에 A씨를 만났는데 아버지에게 못난 꼴만 보여 드려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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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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