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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마당 : 심학규 눈멀다
작성일 2002-10-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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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5503    
첫째마당 5. "그라지말고 관아에 한 번 가보이소오"

▲<충남 천안 직산 관아(官衙)/ 강동환님의 역사현장>


곽씨 부인은 남편 심학규가 아이들의 새총에 눈을 다쳤다는 사실을 알고 동네 아이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누고?. 우리 집 양반자테 돌메이를 던진 아가 누고?"

"지는 모르겠는데예. 지는 묏등걸에서 안놀았심미더"

집집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은 물어 보았지만 모두 다 모른다고만 했습니다. 심학규는 처음에는 오른쪽 눈을 다친 것 같았는데 계속 열이 나고 상처가 덧나서 이제 왼쪽 눈까지도 옮아간 듯 했습니다. 남편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누가 했는지는 알 수도 없고 그 동안 푼푼이 모아 두었던 돈냥도 벌써 약값으로 바닥이 나고 곽씨 부인은 애가 탔습니다.  

"그라지 말고 관아에 한 번 가보이소. 범인을 잡아 줄 지 누가 암미꺼?"

보다 못한 무당 봉화의 말에 귀덕어미가 펄쩍 뛰었습니다.

"이 양반 다친 기 관아하고 무신 상과이 있따꼬. 까딱하다가 귀덕애비 꼴 날라꼬 그를 간
단말인교?"

"그어 가믄 무신 수가 있겠능교?"

"급하믄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꼬 무신 수가 생길지 누가 암미꺼"

봉화의 말을 듣고 여러 날을 두고 생각한 곽씨 부인은 드디어 읍내로 나갔습니다. 그 동
안 읍내에 삯일하러 더러 와 보기는 했지만 관아라니 그곳은 죄 지은 사람만 가는 곳인
줄 알고 있었기에 관아 담장만 보아도 무섬증이 들어 눈을 비껴가던 곳인데 그곳에 들어
가 보라니 봉화네도 참 너무 한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 동안 열심히 일해서 조금씩 모아 두었던 돈은 남편 약값으로 다
써버리고 이제 약값조차 마련할 길이 없는데도 남편의 상처가 낫기는 커녕 아직도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차마 관아 대문을 들어설 용기는 없어 대문 앞에 긴 창을 꼬나들고 버티고 선 포졸을 이리저리 훔쳐보며 대문 앞을 맴돌기만 했습니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귀덕아비처럼 태질이나 하고 가다 삐리면 우짜꼬?"

처음 무당 봉화가 관아에 찾아가 사또에게 하소연 해 보라 했을 때였습니다.

"안할라요 관아에 찾아 갔다가 접 때 귀덕애비 맹키로 태질이나 당하믄 우짤라꼬 그어를
찾아간단 말인교?"

오래전 귀덕아비가 어느 부자댁에 일하러 갔다가 그 집 도련님이 지게 작대기를 분질러 놓은 것을 모르고 일어서다가 허리를 다쳤습니다. 귀덕아비는 억울하다고 원님을 찾아 갔다가 '양반을 능멸한 죄'라며 오히려 곤장 10대를 맞아 다친 허리에다 엉덩이까지 장독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던 것입니다.

"하기사 우리 같은 상것하고 아지매는 다리니께. 아지매는 그래도 양반이니께 그리는 몬
할 낌미더."

귀덕어미의 볼멘소리는 평소 양반에 대한 억하심정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귀덕어미가 잘 모르고 한 소리였습니다. 몰락양반이 행세할 수 있는 것은 몇가지 되지 않았습니다. 양반이면 누구나 공부를 해서 과거를 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보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란 물론 타고난 재능과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어디 그것만 있다고 과거에 급제할 수 있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공부할 수 있는 뒷바침이 있어야 했습니다.

요즈음도 자식 좋은 대학 보낼려고 좋은 선생, 좋은 학교, 좋은 학군까지 고르느라 내노라
하는 사람들까지- 까지가 아니고 끼리인 것 같습니다. 보통사람들은 평생 꿈도 못 꿀 돈보
따리를 싸들고 독선생을 찾아 다니고, 심지어는 위장전입이라는 불법까지 저지르지 않습니까.

그때도 과거급제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기에 온갖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기는 요즈음과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 더구나 당장 먹고 살길마저 막연한 몰락 양반에게는 더욱 더 멀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통사람 즉 상민은 누구나 1)공납과 2)부역과 3)군역의 부담을 져야 했는데 공납
이란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이고, 부역이란 나라일을 하는 것이며, 군역은 병정이 되는 것
입니다. 병정에 가지 않는 사람은 대신 군포라는 것을 납부해야 했는데 수령들의 착취가
심해서 죽은 사람이나 갓난아이까지도 군적에 올려 군포를 받아갔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돈 있는 양반들에게 군포를 많이 받고 군역을 대신 해주었을텐데 그 시절
만 해도 양반은 군역도 면제해 주었기에 수령들의 돈벌이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예전처럼 군포 즉 돈을 내고 군대를 안갈 수만 있다면 누구나 돈을 내고 군
대를 안갈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법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을 내고 군대를 안
갈 수는 없는데도 걸핏하면 병역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운 것을 보면 모르긴 해도 돈으로 군대를 대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하기사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못 할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본주의의 4)맹아가 막 싹
트기 시작한 그 시절에도 돈으로 못 할게 없었으니까 이런 말이 나도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 조체. 돈 좃코 말고. 돈만 있으마 처이 불알도 사고, 중의 상투도 산다 안카더나."
 
아참,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영웅이신 이순신 장군은 어느 계급이었을까요.
본시 양반이란 문과와 무과가 있어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은 무과에 급제한 양반이었습니다. 천민도 군역은면제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좋아 할 것은 못됩니다.

언제 누가 5)군노나 6)역노가 될지 몰랐으니까요. 심학규가 비록 보잘 것 없는 가난뱅이였
지만 양반은 양반이었으니까 부역과 군역은 면제받았고 공납은 소출이 없었으므로 낼 것
이 없었고 그 외에는 상민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소출이라니, 잠깐만요.

*****
1)공납(貢納) : 본래 현물을 납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공납제는 자연경제가 지배적인
전근대사회에서 국가재정 및 지배계층의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수공업의 일
정한 발달을 전제로 한 것이면서도 아직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이 미숙한 단계에서 실시되다
가, 상품화폐경제가 어느 정도 발달한 16세기에 가서는 공물을 당시 교역의 수단이던 물품
화폐, 즉 쌀, 베로 거두는 대동법(大同法)으로 전환되었다.

2)부역(賦役) : 국가가 백성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징발하는 수취제도.
그 형태는 궁궐을 조성하는 역이나 성을 쌓는 역과 같이 국가 차원에서 동원하는 것과, 조
세나 공부(貢賦)를 마련하고 운반하기 위한 공역(貢役)처럼 군현(郡縣) 차원에서 동원하
는 것이 있었다. 동원된 때에는 식사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으며, 그 때문에 가난한 사람
은 점심을 굶으며 노역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요역은 그것이 적용되는 일의 내용
에 따라 전세미(田稅米)의 수송, 공물(貢物), 진상물, 잡물(雜物)의 조달, 토목공사, 지대
(支待), 영접(迎接) 등 크게 네 종류로 구분되었다. 초기에는 인정의 수에 따라 일꾼을 내
도록 했으나, 1428년(세종 10)부터 토지소유 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호를 5등급으로 나누
어 일꾼을 내게 하는 계전법(計田法)으로 바뀌었다.

3)군역(軍役) : 양인 정남(良人丁男)이 국가에 대해 지는 신역(身役).
그 성격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였다. 고려 목종 때에 완성된 고려 병제에서는 16세 이
상 60세 이하의 모든 정(丁)에게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였으나, 관원 ·공신의 자손과 양반
자제는 물론 무직역자(無職役者)인 한인백정(閑人白丁) ·역천구(役賤口:奴婢 등) 등은 원
칙적으로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아니하고, 경우에 따라 간혹 징집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양인의 모든 정에게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여, 이를 정규군인으로서 활동할
정군(正軍)과 정군의 경제적 뒷받침을 맡을 봉족(奉足)으로 구분하고, 병종(兵種)에 따라
정군 하나에 봉족 몇을 일정하게 배정하여 하나의 군호(軍戶)가 되게 하였다. 그러다가 흥
선대원군 집정 이후에는 양반층에게도 동포(洞布)를 부과하여 군역을 지게 함으로써 군역
이 균등화 되었다.

4)맹아(萌芽) : 어떤 새로운 일의 시초, 또는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는 것. @문명(文明)의
맹아.

5)군노(軍奴) : 조선시대 지방 관청에 딸려 있던 사령(使令).
사령은 비천한 자들이 맡는 것으로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이들을 "본래 정처 없
이 부랑하던 무리"로 규정하고 있다.
지방 관청의 군관·포교 밑에서 죄인을 잡아오는 일, 곤장을 때리는 일, 죄인에게 칼[枷
械]을 씌우는 일, 관청의 문을 지키는 일, 또는 수령의 둔전(屯田)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
다.

6)역노(驛奴) : 각 역(驛)에서 사역되는 노비
역에서 하는 일은 교통, 운수 외에 죄인의 체포, 수감, 석방 등을 주관하였고 노비의 추쇄
도 수행하였다. 역은 교통이나 군사의 요지이므로 운송수단로서 역마의 확보와 관리가 무
엇보다 중요한 과제였으나 조선후기에는 말을 확보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역이 폐쇄 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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