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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마당 : 심청이 젖동냥하다
작성자 하사가
작성일 2004-02-28 (토)
첨부#2 1077944916.jpg (0KB) (Down:67)
ㆍ추천: 0  ㆍ조회: 3012    
둘째마당 7. 판수 지화를 종3품 겸교내시에 제수

▲  세종대왕실록 ⓒ서울문화재


세종대왕이 자신과 같이 앞을 못 보는 소경이었다는 말에 심학규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1)그래서 세종대왕은 온천행을 자주 했다는데 눈도 나쁘고 피부병도 많았다네."

"앞이 안보이는데 우째 언문을 맹글었겠능기요?"

"이 사람아, 세종대왕이 맹글었다고 그거를 임금이 직접 다 했겠나, 임금님이 이런 글자를 맹그러카고 지시만 하믄 되것제"

"그라믄 언문은 누가 맹글었는데예?'

"우리 시님이 그카던데 집현전 학자들이 맹글었다네"

"세종대왕님이 소경이었다카믄 사람들은 와 모르고 있을까예"

"자네도 과거공부를 했서이 2)'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함이 효지시야라'를 알겠구먼"

"예, 신체발부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니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말이지예"

"그렇다면 나나 자네는 어찌되것는가"

"그야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불효막심이지요."

"바로 그 말이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믄서 유교를 중시하였서이 신체가 훼손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양반들은 머리도 짜르지 않았다네. 그런데 임금이 눈을 상했다카믄 이 또한 불효가 아니겠나. 그러이 신하들이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겠나"

"듣고 보이 그 말도 맞겠네예"

"그래서 예전부터 잘못에 대한 벌로 일부러 3)신체를 훼손시켰다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네 싶네"  

심학규는 스승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이미 눈을 훼손했으니 이 불효를 어찌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라믄 슨상님이나 저나 다 불효자란 말임미꺼?"

"그럴 것 없네, 어느 누가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싶어서 훼손하는 사람이 있겠나. 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온 것이니 팔자려니 여겨야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심학규는 또 다시 울분이 끓어 올랐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가 싶어서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여보게 심서방. 우리가 우짜다가 여기까정 오게 되었을꼬?"

"아참 내 정신 좀 보게. 슨상님이 우짜다가 의술을 배웠는가를 물었다 아임미꺼?"

"그렇지. 세종대왕 때만 해도 4)명통사라는 절이 있어서 맹승들이 함께 모여서 공부도 하고 국태민안을 비는 기도도 했다네"  

"눈감은 사람들이 시님이었단 말임미꺼"

"그 뿐일 줄 아는가, 과거시험에 음양과라는 기 있는 줄은 아는가"

"잘 모리것는데예. 그거는 머하는뎀미꺼"  

"과거라 카믄 다 양반들만 하는 건 줄 알것지만서도 5)음양과라는 잡과가 있어서 중인들도 과거를 보았다네. 음양과에는 천문학 지리학 명과학의 세가지로 사람을 뽑았다네"

"그란데 슨상님, 천문 지리는 알것는데 명과학은 머하는 김미꺼"

"6)명과학이란 사람의 운명이나 길흉을 점치는 것으로 눈감은 사람들이 응시를 했고 1등에 합격하면 종 8품 봉사(奉事)에 제수되었다네"

"머라꼬예, 눈감은 사람도 과거를 보고 벼슬을 했다말임미꺼. 그라고 그기 봉사란 말인기요?"

"과거를 봤는지 안봤는지는 잘 모르것네만 소경이 고려시대 배슬이라꼬 했을낀데"

"그치만 그거는 옌날 일 인줄 알았지예. 그카믄 슨상님은 와 과거를 안 봤는기요?"

"그기 글시 언제부턴가 엄서지고 말았다네"

"와 누가 엄샜단 말인기요?"

"우리 같은 사람이 우째 알것노. 7)세종대왕 때만 해도 판수 지화(池和)를 8)종3품 겸교내시에 제수하였다네"

"와, 종 3품이라카믄..."

"절도사가 3품이니께 꽤 높은자리지. 9)그란데 냉중에 지화의 자리가 너무 높다하여 파면을 탄핵하는 자가 있었는데 세종대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네."

"저런 죽일 놈이 있나, 지는 평생 뱅신 안 되라는 법 있답디까"

"그러게 말일세. 자화의 관직이 높아서 사모와 품대 차림으로 조정의 길에 다니면서 조관과 나란히 서게 하니 불편하다고 했다는데 한마디로 하자면 우리 같은 뱅신하고는 자리도 같이 하기 싫다는 말이제"

"명통사도 엄서지고 명과학도 엄어지서이 우리 같은 뱅신은 우짜란 말임미꺼"

"그래서 우리 시님이 내자테 의술을 가리친기라네"

"아하, 그래서 슨상님이 의술을 배우신기네요"

"우리 시님은 앞으로 유교가 더욱 성행하여 세종대왕 같은 어진 임금이 다시 나온다케도 경 읽고 점치는 일은 점차 퇴색 할 것이므로 의술을 배우라 하셨네"

"그라믄 지도 육갑을 배와서는 머할낀데예"

"그래도 당장 엄서질거이 아인데 묵고는 살아야 한하것나"

"그라믄 지도 육갑은 치아뿌고 의술을 배우믄 어떠캤능기요?"

"음양오행을 다 배운 다음에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세"

"어느 세월에 그거를 다 배운다 말임미꺼"

"여보게 심봉사 또 세상이 디짚히믄 자네나 나나 진짜 봉사가 될 날이 올지 누가 알것나.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나."  

"예 이봉사 슨상님"

심학규와 이갑생은 서로를 봉사라 부르며 허허허 하하하 한바탕 웃었습니다.

**********
7-1)세종대왕이 눈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세종 23(1441)년부터라는데  그 이후 눈이 나빠져서 정사를 보기 어렵다고 세자에게 전위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신하들이 한사코 말렸다고 한다. 세종 092 23(1441)/04/04  (경오) / 임금이 자신의 안질에 대해 언급하다. ⓒ국역 세종실록

7-2)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니라신체의 모든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니 감히 훼상(훼손하거나 다치게)하지 아니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사자소학(四字小學) 의 효행(孝行)

7-3)오형(五刑) : 죄질에 따라 죄인에게 가하는 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 등 다섯 가지 형벌. 본래 오형은 ≪서경≫〈순전 舜典〉의 유유오형(流宥五刑)에서 비롯되었다. 주나라 형서(刑書)인 ≪여형 呂刑≫에 묵(墨 : 刺字)·의(奔 : 코 베기)·궁(宮 : 去勢)·비(藜 : 발뒤꿈치 베기)·살(殺 : 死刑)의 다섯 가지 형벌이 소개되는데, 이는 신체를 훼손하는 체형이다.

7-4)명통시(明通寺) : 조선 초기 맹승(盲僧)들이 모이던 집회소를 지칭한다.  설치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태종 2년 임오(壬午)가을 7월 맹인을 명통시에 모아 기우제를 행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조선 중기 이후에는 맹청(盲廳)에서 맹인들이 모였다고 한다. -필자 주

명통시에는 서울에 있던 맹승들이 이곳에 모여 초하루, 보름에 한 번씩 경(經)을 읽고 수(壽)도 빌었다  
-세종 7년 7월 2일 선(禪)·교(敎) 양종(兩宗)과 명통시(明通寺)에 비가 오기까지 기도하도록 명하였다.
-세종 8년 4월 23일 흥천사(興天寺)에서 비를 빌게 하였다.
-세종 8년 5월 25일 명통사(明通寺)에서 기우하는 맹인(盲人)에게 쌀 30석을 내리었다.
-세종 9년 5월 29일 사직에 비를 빌다. 동자는 광연루, 중은 흥천사, 무녀는 흥인문 밖에 모아 비를 빌었다.
-세종 9년 6월 20일 승려는 흥천사(興天寺), 무당들은 한강, 맹인들은 각자 명통사(明通寺)에 모이어 기우하였다.  ⓒ실천불교>통권 제17호

7-5)음양과(陰陽科) - 봉사의 유래
조선시대 기술관의 고시(考試)인 잡과로서, 천문학·지리학·명과학(命課學)의 셋으로 나누었다.
잡과에 응시하여 합격하면 1등은 종 8품 봉사(奉事), 2등은 정 9품 부봉사 (副奉事), 3등은 종 9품 참봉(參奉)을 주었다.

7-6)명과학(命課學) : 명과(命課)란 운명 길흉 등을 판단하는 학문으로, 이들은 음양길흉점복(占卜)의 명과학(命課學)을 담당하는 맹인이었다. 명과학은 1445년(세종 27) ‘명과맹(命課盲)은 연소자 10명을 뽑아 서운관(書雲觀)에 소속시키고 훈도(訓導) 4,5명을 두어 3일에 한 번씩 모여 습업(習業)하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서운관은 관상감의 전 기구이므로 그해 이전에 이미 설치되었다.

7-7)조선의 관직명 : 조선초기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범제화 된 관직은 문관과 무관 각 18품계인데 여러번 개편 되었으나 많이 알려진 관직만 발췌하였음 - 필자 주.
-정 1품(正一品官)
대군(大君), 공신(功臣) 부원군(府院君) 太師(태사)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 도제조(都提調=영의정이 겸임하는 관직임)
-종 1품(從一品官)
좌찬성(左贊成), 우찬성(右贊成), 판사(判事), 제학(提學=규장각의 관직),

-정 2품(正二品官)
좌우참찬(左右參贊), 판서(判書), 대제학(大提學), 지사(知事), 판윤(判尹), 도총관(都摠管).
-종 2품(從二品官)
참판(參判), 대사헌(大司憲), 동지사(同知事), 관찰사(觀察使=도의감사), 좌우윤(左右尹), 부총
관(副摠管),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 내금위장(內禁衛將),

-정 3품(正三品官)
대사간(大司諫), 참의(參議), 부제학(副提學), 도승지(都承旨), 좌우승지(左右承旨), 판교(判校),
* 이상 당상관(堂上官)

-종 3품(從三品官)
첨위(僉尉), 사간(司諫), 편수관(編修官), 참교(參校), 검교(檢校), 부사(府使), 절도사(節度使),

-정 4품(正四品官)
수정(守正), 전첨(典籤), 사인(舍人), 장령(掌令), 시강관(侍講官), 응교(應校), 진선(進善),
-종 4품(從四品官)
경력(經歷), 부응교(副應敎), 서윤(庶尹), 교감(校勘), 군수(郡守), 만호(萬戶).

-정 5품(正五品官)
전부(典簿), 검상(檢詳), 정랑(正郞), 지평(持平), 교리(校理), 문학(文學), 겸문학(兼文學),
-종 5품(從五品官)
판관(判官), 도사(都事), 별좌(別坐), 부교리(副敎理), 현령(縣令), 부사직(副司直),

-정 6품(正六品官)
좌랑(佐郞), 감찰(監察), 사평(司評), 정언(正言), 검토관(檢討官), 수찬(修撰), 사서(司書),
-종 6품(從六品官)
주학교수(籌學敎授), 별제(別提), 교수(敎授), 찰방(察訪), 현감(縣監), 종사관(從事官),

-정 7품(正七品官)
주서(注書), 봉교(奉敎), 박사(博士), 낭청(郞廳), 기사관(記事官), 수문장(守門將).
-종 7품(從七品官)
직장(直長), 좌종사(左從史), 우종사(右從史), 부사정(副司正), 별회(別會).

-정 8품(正八品官)
사록(司錄), 저작(著作), 설경(說經), 학정(學正), 부직장(副直長), 별검(別檢), 사맹(司猛).
-종 8품(從八品官)
계사(計士), 심율(審律), 봉사(奉事), 부전음(副典音), 별검(別檢), 전곡(典穀), 화리(화吏),

-정 9품(正九官)
주학훈도(籌學訓導), 율학훈도(律學訓導), 정자(正字), 전경(典經), 검열(檢閱), 학록(學錄)
-종 9품(從九品官)
회사(會士), 분교관(分敎官), 학유(學諭), 참봉(參奉), 훈도(訓導), 심약(審藥),

7-8) 세종 075 (1436) 18/10/05(정묘) / 판수 지화 등이 작록을 받고자 상언하여 관직을 제수하다
...<임금이> 노한 등의 의논에 따라, 지화(池和)를 중훈 검교 첨지내시부사(中訓檢校僉知內侍府
事)로 삼아 사옹원 사직의 일을 보게 하고, 이신(李信)을 조산 대부 검교 동첨지내시부사(朝散大
夫檢校同僉知內侍府事)로 삼아 사옹원 부사직(司饔院副司直)의 일을 보게 하고, 곧 사모(紗帽)
와 띠를 내려 주었다.
ⓒ 국역 세종실록  *종3품이면 이사관급으로 입법부나 사업부 행정부의 국장급이다. - 필자 주

7-9) 세종 075 18/10/05(정묘) / 이맹전이 지화의 관직을 파면하기를 건의했으나 받아들이지 않다    

사간원 우정언(右正言) 이맹전(李孟專)이 아뢰기를,
“지화와 이신에게 관작을 제수하시니, 신 등은 생각하건대, 옛날에 당나라 태종이 방현령(房玄齡)에게 이르기를, ‘악공(樂工)과 잡류(雜類)들은 가령 기술이 제배(輩)보다 뛰어나더라도 다만
전백(錢帛)을 특별히 내려 주어 그 재능을 상주면 될 것이며, 반드시 등급을 뛰어 넘어 관작을 주어서 조정의 현인·군자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며, 자리를 같이하고 먹게 하여, 사대부들의 수치가 되게 하지 말라.’ 하였는데, 지금 지화(池和) 등은 비록 관작은 주었지마는 어찌 그 사무를 맡길 수가 있겠습니까. 또 사모와 품대 차림으로 조정의 길에 다니면서 조관과 나란히 서게 하니 진실로 불편한 일입니다. 원컨대 그 관직을 파면하고 다만 월료(月料)만 주어서 그 공을 상주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진실로 옳다. 그러나 판수이면서도 관직을 받은 것은 지금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예로부터 있었다. 또 사옹원의 관직은 공인·상인·천례(賤隸)들도 모두 받게 되었는데, 아마 모두가 그 사무를 반드시 맡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지화 등은 모두 국가의 점치는 일과 혼인하는 일 등에 참여 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찌 그의 공이 없겠는가. 비록 사옹원의 관직을 제수하더라도 의리에 해로움은 없을 것이다.” 하였다.ⓒ 국역 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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